글 쓰는 AI는 기특하지만 바둑 두는 AI는 무섭다

며칠 전 인공지능 이론의 선구자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가 세상을 떠나자 WIRED는 기사작성 로봇인 Wordsmith에게 부고기사 작성을 의뢰했다. 번역 알고리즘을 AI라고 할 순 없지만 그 기획만으로도 민스키 박사에게 바치는 가장 훌륭한 방식의 송사였다. 박사의 (간접적) 후손인 워드스미스는 – 비록 먼 미래의 경쟁자(?)인 글렌 리프킨Glenn Rifkin 뉴욕타임스 기자의 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 퍽이나 멋진 부고기사를 선보였다.

그리고 목요일, 구글의 머신러닝 시스템 알파고AlphaGo는 유럽 바둑대회 3회 우승 경력의 프로기사와 대결해 다섯 번 모두 이겼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 전에 알파고는 현존 최고의 바둑프로그램들과 500국을 대결해 499승을 거뒀다.

사람은 이미 체스, 슈팅게임, 재퍼디 등에서 AI에게 졌다. 하지만 ‘우주 전체 원자 수보다 많은 경우의 수’를 가진 바둑, 흔히 인생이 담겼다고들 말하는 그 바둑에서 알파고가 인간계 최고수를 꺾는다면, 그건 정말 새로운 차원의 얘기가 될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꽤나 섬뜩할 것 같다.

오는 3월 알파고 앞을 막아설 인간계 바둑 최고수는 이세돌 9단이다. 음.. 이세돌이 4승 1패쯤을 거두고 “옆동네 구리 9단이나 이기고 나한테 비벼볼래? 걘 내 라이벌이야” 하고 예의 그 ‘센돌 스타일’로 시크하게 한 마디 해 주기를 기대한다.

헤이트풀 8: 영화가 멋진 경험이었던 그 때

The Hateful Eight Trailer

“영광스러운 70미리 울트라 파나비전으로 보라!”

광활한 2.76대1의 화면비를 자랑하는 <헤이트풀 8> 트레일러에 나온 저 문구 그대로, 쿠엔틴 타란티노의 여덟 번째 작품은 – 그의 전작들과 달리 – 그의 입담과 B급 감수성이 아닌, 촬영 장비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나오는 기이한 작품이다. 60-70년대 헐리우드 영화에 대해 세상 누구보다 강한 향수를 지닌 타란티노의 ‘덕력’이 이번에는 플롯이 아닌 장비에 가 붙은 걸까. 정말로 ‘양덕’의 끝을 보여주려고, 미국에서 단 열 편의 영화에만 사용되었으며 마지막 작품이 나온 지 올해로 꼭 60년째인 70mm 울트라 파나비전 장비를 기어이 창고에서 끄집어낸 걸까.

어찌됐든 이 덕에 <헤이트풀 8>을 감상한 과정은 보편적인 영화 관람 흐름과 꽤나 다를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도 백여 곳에 불과한 오리지널 필름본 상영 로드쇼는 국내에서 꿈도 꿀 수 없는 일이고, 1.85대 1 화면비의 손바닥만한(?) 요즘 멀티플렉스 스크린으로 2.76대1의 영상을 보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일 테니, 그나마 아래위 공간이 조금만 남게 되는 2.35대1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가진 몇몇 극장 스크린에 이 영화가 걸리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와이드화면비’와 ‘대규모 스크린’ 하면 떠오르는 한 곳, 영등포 스타리움에 지난 월-수 딱 3일간 영화가 걸렸다! 시사회만 여기서 하고 정작 상영은 소규모 스크린에만 배정해 엄청난 욕을 먹던 CGV가 결국 영화팬들의 항의에 눈곱만큼 성의를 보인 거라는 후문. 그래서 조조를 보려면 집에서 여섯 시에 나와야 하고 마지막 편을 보면 새벽 3시에 집에 가야 하는 시간표 배정은 함정

필름 포맷은 타란티노의 비전에서 중요한 일부분이었다. 그는 언제나 자기 작품에 과거의 영화를 인용하는 영화맨이었고, 어떤 인터뷰를 하든 영화 필름이 역사 전체를 끄집어내곤 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시네마스코프(2.35:1)로 찍지 않았다. 그것보다 더 위험하고 귀한 것으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12편도 되지 않는 영화에 사용되었으며 1966년작 하르툼 이후엔 아무도 쓰지 않았던 울트라 파나비전(2.76:1)을 부활시켰다. 시네마스코프보다 더 넓은 화면비를 70mm 필름에서 구현하기 위해선 촬영과 상영 모두에 특수한 렌즈가 필요했다. 12월 그는 이 필름들을 가지고 백여개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특별 로드쇼를 할 것이며, 뉴욕 타임즈에 따르면 상영관들은 한 세트당 8만 달러에 달하는 장비를 사용해야 한다. 타란티노의 계획은 크리스마스에 필름으로 개봉해서 2주 동안 70mm 필름으로만 상영하고, 그 후에야 보편적인 디지털 포맷으로 멀티플렉스에 개봉할 것이다. (The Verge, “Does The Hateful Eight’s 70mm roadshow really impact the future of film?” Eggry Lab 번역문 헤이트풀 에이트와 필름의 미래)

The Hateful Eight

울트라 파나비전으로 타란티노가 찍은 것

어렵게 스크린을 찾고, 좋은 자리를 확보하느라 이십대 시절 수강신청 때나 하던 클릭질 신공까지 써 가며 본 영화가, 그래서 트레일러가 말하는 것처럼 충분히 영광스러웠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결국 “(엄지 척! 이란 뜻에서의) 타란티노다웠다”고밖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엄청난 군중 씬, 장대한 대자연의 스펙터클을 한 샷에 담을 수 있는 지구상 10여 세트밖에 남지 않은 그 “영광스러운” 장비를 손에 쥔 이 헐리우드 키드는 어쩜 그렇게도 시크하신지, 우리같은 범인들이 기대할만 한 그런 장면은 쿨하게 넘겨버리고 모든 일들이 오두막 한 채 속에서 일어나고 끝나는 한 편의 연극 같은 영화를 내놓으셨다. 그 영광스러운 카메라는 3시간의 분량 중 적어도 2시간 40분 이상 마차 안, 혹은 오두막 안이라는 지극히 연극 무대 같은 공간 안에 머무르며 주인공들의 ‘썰전’을 우직하게 받아내기만 한다. 소제목과 몇 초 간의 암전으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여섯 개의 장, 게다가 중반부터는 중간중간 이야기를 설명해 주는 목소리(변사?)가 등장하는 형식까지, 타란티노는 가장 영화적인 스펙터클을 담을 수 있는 장비로 가장 연극적인 영화를 만들어 보여주며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다.

“어때? 쥑-이지?”

“쥑-이는” 경험으로서의 영화 관람

수다스런 등장인물들, 피와 튀고 살이 터져 나가는 살육, 시점과 침묵 사이에서 능수능란하게 긴장감을 쥐락펴락하는 예의 그 타란티노 영화 연극? 한 편을 이렇게 보고 나서야, 유출된 영화대본에서 남발되던 천연덕스런 그 ‘영광스러움’이 어딜 향하고 있는 지 명확해졌다. 타란티노가 바치는 영광의 대상이란 70mm짜리 초대형 필름이 아니라, 그 수고스러운 필름이 지게차로 운반돼 너댓 명이 들러붙어 영사기로 틀어주던 60-70년대의 영화적 경험이다. 시각적 스펙터클은 현대의 CG기술로도 충분히 재현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옛날 전성기 헐리우드 영화 관람 행위를 통해 관객들이 느끼던 경험적 스펙터클은 손바닥만한 멀티플렉스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것이다. 그건 소프트웨어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 영화사 창고 구석 먼지와 함께 잠들어 있는 하드웨어의 문제이니까. 작은 멀티플렉스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디지털 영화가 “공중 케이블TV 시청”이라 간주하는 타란티노이기에 외려 축제와도 같은 이 모든 야단스러움은 충분히 말이 되는 이야기다.
<헤이트풀8>을 위해 미국에서는 서커스단 순회 공연처럼 오리지널 영사기가 방문하는 도시에서 축제 같은 ‘로드쇼’가 열렸다. 그러지 못한 다른 나라에서는 영화팬들이 2.76대1 화면으로 제대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극장을 찾아 헤맸다. 나 역시 남는 시간에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그 영화를 보기 위해 일정을 조절해야만 했다. 이 모든 과정, 이 모든 수고스러움을 거쳐 본 영화는 그 자체로 내게 호사스러운 경험으로 남았다. 그 옛날, ‘꿈의 공장’ 시절 헐리우드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이 가졌던 스펙터클한 경험이 바로 이렇지 않았을까. (영화 자체의 완성도와 별개로) 타란티노가 장비 타령을 하며 만든 여덟 번째 영화가 갖는 성취는 바로 이 지점이다. 현대의 그 어떤 최첨단 장비로로 재현해낼 수 없는 “영화를 보는 호사스러움”을 영화보는 게 더 이상 호사스러운 일이 아닌 시대에 재현해 낸 것. 그간의 모든 야단법석과 시행착오들이 의도한 것이든 의도한 일이 아닌 것이든, 영화를 보기 위한 나의 몇 가지 분투들은 이 호사스러운 세 시간의 경험으로 깨끗하게 보상받았다. 줄 서서 먹는 맛집은 인정할 수 없어도 줄 서서 보는 영화는 인정할 수 있는 헐리우드 키드라면, 그 “영광스러웠던” 3시간의 여행을 이제 두 번 밖에 더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아쉬워질 게다.

이제 좀 그만 하라고 애원할 때까지 무대에 서 있을 필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날 더 원할 때 떠나는 게 낫다는 말이다. 영화 감독이란 정말이지 젊을 때 해야 하는 직업이다. 그리고 첫 작품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긴밀하게 이어지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공격할 의도는 없지만, 내가 쌩쌩할 때 그만두고 싶다. 영화 열 편 정도가 내 필모그래피로 적당하다고 생각하니 이제 두 편 더 남은 셈이다. 돌에다 새겨둔 건 아니지만 그게 내 계획이다. 무사히, 망쳐버리지 않고 만든 영화 열 편이면 내 첫 커리어를 마무리하는 데 적당하지 않나 싶다. 내가 이렇게 말했다 해서 먼 훗날 좋은 영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해도 영화를 하지 않을거란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열 개. 딱. 끝. 이러고 사람들이 날 더 원할 때 떠나는 게 옳을 것 같다. (cinemablen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