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Life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읽고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빨간책방>에서 가열차게 “까였던” 이 한국어판 제목에 대해 최대한 관대하고자 했습니다. (아마도 번역 제목의 선정엔 관여하지 않은 듯한) 번역자의 말마따나 ‘반어적인 제목’일 수 있으니, 책 읽는 내내 최대한 이 제목을 해석해 보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실패. 줄리언 반스의 작품들 중 최고로 쉽게 읽히는 책의 제목을 이토록 가열찬 해석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 만행에 대한 비난은 차치하고라도, 저는 책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저 제목을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 할지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The Sense of an Ending

원제를 갖고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책의 줄거리는 비로소 제목과 맞아 떨어집니다. 편집자는 우리와 “절음발이 범인 찾기 놀이”를 하고 싶었던 건지도… 말하자면 <예감은…>은 얽히고 설킨 실타래의 끝(end), 역사가들과 목격자들과 자기 스스로가 진실이라 믿었고 또 믿기 원했던, 지나가고 잊혀져 간 일들의 참모습을 감지(sense)하는 과정에 대한 소설입니다.그 실타래의 끝을 속들이 파악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요? 분명히 일어났고 분명히 보고 기억하고 때론 기록까지 남긴 일들에 ‘역사’라는 라벨을 붙이고 진실이라 단정해도 좋은 것인가요? 이에 대해 단호하게 “아니오”라 말하는 작가는 우리의 지각과 망각과 착각이 실존하는, 혹은 실존했던, 혹은 “철학적으로 자명”한 것들에 비해 얼마나 보잘것없을뿐더러 위험천만한지를 이야기합니다. 헨리 8세 시절의 역사를 축약하라는 선생님의 물음에 대한 어느 바보의 대답처럼, 우리가 진실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기억들은 결국 끝에 가선 “거대한 혼란”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자기 기만과 위선 덩어리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일어났던 일들의 “쌩얼”에 관해

주인공 토니가 그 거대한 혼란의 끝을 감지하기까지 길지 않은 페이지를 채우는 이 작가의 필력은 놀랍습니다. 우리의 허세 가득한 청춘과 늙어서 결코 정복치 못할 외로움에 관한, 머리를 탁 치게 만든 여러 문구들에 비하면 책 제목의 연관검색어로 뜨는 ‘결말의 반전’이 주는 충격은 그리 크지 느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작가가 스토리의 반전이 아니라 기억에 대한 우리 상식의 반전을 이야기하고 싶었음을 이해한다면 더 그렇습니다. 책을 덮고 나면 나의 청춘과 너의 그 말과 우리의 옛 사랑이, 기막힌 우연과 처절한 무용담과 위대한 유산이 발 아래서 흔들거립니다. 세월을 한탄하고 경륜을 숭상하며 늙어갈 우리들이 마지막까지 붙들고 찬양해 마지않을, 하지만 사실은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자기확신”일 뿐인 추억과 역사를 저는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그리고 그렇게 덮어버렸을 저 한심스런 그때의 “쌩얼”을, 그때 내 곁에 있던 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간직하고 있을까요. 두렵고도 궁금해졌습니다.

언뜻 생각하기엔 단순한 질문으로 시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역사란 무엇인가, 라고 말이지. 뭐 생각나는 것 있나, 웹스터?”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입니다.” 내 대답은 좀 빠르다 싶게 튀어나왔다.

“그래, 안 그래도 자네가 그렇게 말할까봐 걱정을 좀 했는데. 그게 또한 패배자들의 자기기만이기도 하다는 것 기억하고 있나, 심슨?”
콜린은 나보다 더 잘 준비된 답변을 했다.

“역사는 생 양파 샌드위치입니다. 선생님.”

“어떤 이유로?”

“죽자고 반복하니까요, 선생님. 우리는 이제껏 역사가 트림하는 것을 보고 또 보았고, 올해에도 또 보고 있습니다. 폭정과 폭동, 전쟁과 평화, 번영과 빈곤 사이를 오가는 천편일률적인 이야기와 천편일률적인 동요뿐이죠.”

“그걸 샌드위치 속에 다 넣기엔 좀 많지 않은가 싶은데?”
우리는 학년 말 특유의 신경증에 의존해 과하게 웃어댔다.

“핀?”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