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Life

현실이 사랑을 학살하고, 문학은 거기다 또 꽃을 피웠다. 김혜진 [중앙역]


Riischildren” by Jacob Riis (May 3, 1849 – May 26, 1914) – Taken from http://www.spartacus.schoolnet.co.uk/USAriis.htm.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사랑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성공이라고 바꿔 불러도 상관없겠다. 사랑은 어떻게 “성공”하는가. 성공 혹은 완성을 어떻게 계량하는가. 완성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건 결과를 두고 해야 하는 건가 과정을 두고 해야 하는 건가. 평가하고 계량하는 것 자체가 사랑에 대한 신성모독인가, 아닌가. 마지막 문장을 덮으며 이런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의 사랑은, 어떤 것이었나 하는.

사랑을 하면 행복해진다 하지만, (인생의) 행복한 결말이 곧 사랑의 완성이라 말하긴 힘들다고 나는 생각한다. 행복과 사랑을 연결짓자마자 “전혀 행복하지 않은” 우리의 현실에서 마냥 행복하기만 할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잘 모르니까. 그렇다고 (인생의) 행복하지 않은 결말을 미완의 사랑이라 하기도 힘들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입에 담는 것조차 버거운 인생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사치라 생각되는 정신 없는 순간이, 이미 우리 곁엔 얼마나 자주 똬리를 트는가.

이제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던 여자의 두 눈이 전부다. 허무와 공허로 가득 찬 여자의 눈 속에서 겁 없이 떠들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 눈은 오래 전 내가 했던 말들을 빠짐없이 기억할 것이다. 여자의 깊은 두 눈 속으로 천천히 잠기는 말들을 떠올린다. 한때 잔잔한 수면을 흔들고 물결을 만들고 파동을 일으키던 고백들이 바닥이 보이지 않는 여자의 두 눈 속으로 한없이 가라앉는 모습을 상상한다.

우연찮게도 오늘자 기사에서 끈으로 서로의 손을 이어 묶은 채 배 위에서 바다로 몸을 던진 60대 남녀의 이야기를 읽었다. 간병인이었던 남자와 환자였던 여자는 제주에서 목포로 가는 배 위에서 서로의 손목에 줄을 감고,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은 채 함께 바다로 뛰어들어 세월호 실종자 해상 수색 현장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두 사람의 사랑은, 그리고 등대 아래 가장 짙은 어둠 같은 중앙역에서 “다시 꿈을 꾸고 싶게 만들어 준” 상대방을 만났던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그들이 끝내 손을 맞잡았단 사실만으로 이미 완성이라 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자유 낙하하는 두 인생이 서로를 우연히 알아보는 순간부터가 이미 내리막의 증폭일 수밖에 없는 파국일까. 그렇게 문학은 사랑과 인생의, 혹은 사랑과 현실의 줄다리기 사이에서 다시 한 번 꽃을 피웠다.

소설이 어떻게 그려지는가

파국을 향해 지독하게 달려가는 서사가 비슷한 느낌을 주어서일까, 문장을 읽는 내내 이창동의 [오아시스]가 생각났다1. 어둠을 향해 한없이 침잠하는 듯한 이야기가 이토록 선명하게 ‘영화적’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1인칭 주인공의 시점에 모든 묘사를 기대고 있음에도 풍경은 생생하고 비유는 아름답고 장면 장면이 선명했다.

손을 뻗어 여자를 만져보고 싶다.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 용기가 나지 않는다. 길고 가는 손가락이나 까만 발가락. 쳐진 가슴과 불룩한 배를 눈으로만 만진다.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을 거라고 짐작하면서도 나는 고집스럽게 여자를 본다. 잠든 여자는 불행해 보이고 한편으로 편안해 보인다. 나는 멋대로 여자를 추측하고 짐작하면서 지루한 밤 시간을 견딘다.
한참 만에 여자가 등을 내보이며 저쪽으로 돌아눕는다. 그런 다음 박스 위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하나로 모아 목 뒤로 밀어 넣는다. 능숙하고 재빠른 동작이다. 어쩌면 여자는 잠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문득 공기 중을 떠돌던 소음이 일시에 사라지고 내가 눈을 깜빡이는 소리까지 여자가 다 듣고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입술을 벌려 소리 나지 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보관함 쪽에 등을 바짝 붙인 채 여자의 웅크린 뒷모습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본다.
등을 내보이고 누운 여자가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린다. 잠꼬대 같기도 하고 혼잣말 같기도 하다. 나는 보관함 쪽에 등을 더 바짝 갖다 댄다. 다시 여자의 목소리가 건너온다. 잠들지 않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여자는 목소리를 키우지 않는다. 다만 내가 알아들을 때까지 같은 톤으로 했던 말을 하고 또 한다. 신문이나 간판을 읽듯 무미건조한 말투다. 한참 만에 여자의 말이 또렷하게 들린다.
나 좀 안아줘요. 그럴 수 있어요?

묘사와 묘사가 이어지는 문장 사이에서 안개처럼 스멀스멀 올라오는 긴장감, 중앙역의 맥빠진 고요 사이에서도 여전히 살아있는 욕망의 날숨소리,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화면을 코앞에 들이 대 주는듯한 음향의 증폭. 침을 꼴깍 삼키는 내 목울대 능선에서 문장과 단어가 마치 숨바꼭질을 하는 것만 같은 부분들이 계속 나온다. 나는 밑줄을 치고 또 치면서 한편으론 감탄하고 또 한편으론 시기한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1. 같은 맥락에서, 만약에 이 소설이 영화화되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여주인공 역으로 문소리 외의 적임자를 나는 상상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