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Life

부모로서가 아닌, 서사를 잃어버린 어른으로서 또 보고픈 영화 [인사이드 아웃]

Inside Out

무지갯빛 자아의 탄생. 그 눈부신 첫걸음에 바치는 픽사의 축복

우리는 흔히 동심을 깬다는 표현으로 세상의 사나움이 아이의 성장을 가져오는 듯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인사이드 아웃>은 ‘알’을 깨는 건 어른의 손길이 아니라 아이 마음속의 치열한 싸움의 결과임을 유치하지도 억지스럽지도 않게 보여줍니다.

“세상이 네 맘 같지 않지?” “너도 이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해”라며 우리는 어른의 이름으로 얼마나 아무렇지 않게 아이들이 한달음에 자라날 것을 강권했던가요. 슬픔과 좌절과 포기의 ‘잿빛 어른스러움’을 깨닫기 위해 우리가 지난날 삭여내야 했던 그 길고도 고통스러운 배신과 원망과 부정의 밤들을 모조리 잊은 채 말이죠.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하얀 도화지에 처음 싹 틔운 단색의 감정들 하나하나가 어떻게 빚어지고 다듬어지고 섞여, 단 한 가지 색도 버릴 수 없는 무지갯빛 ‘성격’으로 자라나는지를 보여주는 세상에서 가장 유쾌하고 감동적인 안내서입니다.

<인사이드 아웃>은 아이의 마음과 경험을 통해 완성되는 성격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 어른들에게는 감정을 재발견하는 기회도 줍니다.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혹은 예술의 다른 말로 일컬을 수 있는 사적인 감정의 공적인 표현법을 되찾는 걸 도와주거든요. 사춘기를 지나고 더는 순수한 감정을 믿지 않게 되면서 한편에 제쳐놓았던, 바로 그 삶의 순수하고도 진실한 감정들 말이지요. 라일리 맘 속에 생겨난, 희로애락이 응결된 무지갯빛 구슬을 우리 어른들 맘 속에서 재탄생한 문학으로 치환하면 어떨까요? 사실 저는 그 마지막의 구슬을 보면서 하나의 단어와 하나의 표현으로 묘사할 수 없는 우리네 복잡다단한 삶을 노래하는 서사와 시에 대한 목마름도 느껴졌습니다.

Inside Out 주인공들

토이스토리Toy Story나 업Up, Wall-E처럼, 아이가 자라서 소년 소녀가 되고 또 어른이 되어 가는 마법 같은 순간을 잡아내는 픽사의 탁월함은 지난 몇 년의 부침을 딛고 <인사이드 아웃>에서 다시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이 시대 최고의 ‘어른을 위한 동화 제작소’가 디즈니 울타리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총명함을 잃어버리지 않았음을 이렇게 증명한 것 같아요. 거의 80년간 ‘조이Joy’가 전제군주로 군림했던 꿈의 왕국 디즈니에 픽사가 심어놓은 – 혹은 다행히도 시들어버리지 않고 싹을 틔워 낸 – 새드니스Sadness의 떡잎이 앞으로 얼마나 더 찬란한 열매를 맺을지 믿고 기다려보아도 될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 여러 사람들, 특히 아이를 가진 사람들은 <인사이드 아웃>을 아이와 함께 한번 더 보고싶은 영화라고 이야기합니다. 저 역시 이 영화를 한두 번 더 봐야 할 것 같지만, 그 때도 아이를 데리고 가야겠단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형형색색의 감정들이 매 순간 폭죽처럼 팡팡 터지고 있을 지금 그 아이의 머릿속에 픽사의 애니메이션 ‘따위’가 얼마나 큰 울림을 줄 수 있을까요. 대신 저는 아이가 요즘 푹 빠져있는 역할놀이에 더 열렬히 동참해, 거실을 괴물이 헤엄치는 바다로 만들고 이불을 호랑이가 숨은 동굴로 만들며 피트 닥터 Pete Docter 감독 못잖은 연출력을 발휘해 볼까 해요. 슬픔에 젖은 아이가 내보낼 구원의 메시지를 품어줄 너른 가슴도 따뜻하게 데워 두고요. 그리고 ‘아이를 가진 부모’가 아닌 ‘너무 커버린 어른의 마음’만 갖고 혼자 극장을 찾을 겁니다. 그리고 영화 속 예의 그 대목에서 또 펑펑 울면서, 그 옛날 잿빛 바람에 날려보내버렸던 ‘빙봉 로켓’이 내 맘 속에서도 무재갯빛 섬광을 내뿜을 때 “Hooray!” 하고 목청껏 외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