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Life

여행의 뒷맛

Okinawa, Japan

아주 정성들여 달인 국화차의 잔향처럼, 여행이 남긴 뒷맛은 사방이 조용할 때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안마 침대에 누워 허리를 쥐어짜는 쾌감에 어흐흑 하고 몸부림치며 코앞으로 다가온 사십대를 절감하던 내가 “일주일 전 지금”을 회상하는 건, 그래서 찻잔 위 뽀얀 구름에 코를 들이대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날도 내내 비가 오락가락했다. 하지만 노르망디 에트르타 해변을 연상케 하던 오키나와 만자모 해안에서 비는 바람에게 잠시 자릴 비켜주었다. 빗소리 대신 “제주도네 제주도” 하던 한국인 관광객의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왔다가 파도를 맞고 부서졌다.

나는 파도와 바람과 “제주도네 제주도” 하는 소리가 씨름하는 코끼리 모양 바위보다는 간만에 눈에 들어온 수평선이 그렇게 좋았다. 갠 하늘 아래로 끝까지 뻗은 바다는 파도가 켜켜이 쌓여있는 높다란 진열장 같았다. 와르르 머리 위로 쏟아질 것만 같아, 진열장 꼭대기 캔디박스를 노리는 아이마냥 렌즈를 조심조심 당겼다.

누웠던 바다가 점점 일어섰다. 멀리 관광객들 등 뒤로 수평선이 새파랗게 날을 세웠다. 잔뜩 등을 웅크렸던 거인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거인도 수평선도 파도도 누굴 위협할 순 없었다. 뷰파인더 안에서만 사나웠고, 눈을 떼면 언제 그랬냐는듯 시치미를 뗐다. 난 렌즈를 다그치며 더, 더, 더를 외쳤다. 하지만 거기까지. 140mm로 바다를 일으키는 건 무리였다. 또한 무척이나 당연하게도, 수평선 끝 캔디박스는 손에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