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기업과 1인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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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치고 장구 치기: 1인기업과 1일출판사

시작은 답답해서

에디터들은 답답하다. 힘들게 원고를 작성해 시안까지 찾아 – 물론 이런 시안이라는 게 그저 ‘외국 잡지 카피’에 불과하다는 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 디자이너에게 건네주면, 디자이너가 내놓는 결과물은 대개 해당 시안의 업그레이드가 아닌 마이너 버전 – 더 심하게는 그냥 짝퉁 – 인 경우가 태반이니까.

사실 디자이너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그저 에디터의 ‘느낌’에 기반한 시안은 디자이너가 작업해야 할 실제 원고와 분량도, 구성도 별로 비슷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디자이너가 필요한 거 아니냐, 그걸 잘 맞게 조정하라고 디자이너가 있는 게 아니냐, 라고 말한다면 디자이너들이 할 말은 하나밖에 없다. “니가 가라 하와이”)

그래서 이상적인 디자인 작업이 되려면 에디터의 ‘느낌’과 디자이너의 ‘경험 및 감각’이 맘껏 충돌하고 소통하고 버무려져서 – 그것이 타협이든, 한 쪽 주장의 관철이든 – 양쪽 다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합의안이 먼저 나와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에디터는 자신에게 부여된 창작의 시간을 오롯이 다 쓴 뒤 데드라인에 임박해서야 디자이너에게 시안과 원고와 사진을 던지고 퇴근한다. 디자이너에게는 대개 그런 창작의 시간이란 게 별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는 이른 시일 안에 시안을 내 놓아야 하고, 대개는 작업해야 할 페이지가 단지 그 한 꼭지가 아니다.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그 한 꼭지를 갖고 에디터와 충분히 대화하고 브레인스토밍을 할 이상적인 시간따윈 이 존재하지 않는 거다.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하는 에디터의 느낌을 현실로 구현하는 과정을 온전히 혼자서, 시간에 쫒겨가며 짊어진 끝에 내놓는 시안이 양쪽 모두에게 만족스러울 리가 없다. 직관과 상상력이 아니라, 경험과 (대개는 진부한) 관습에 의존해 급히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결과물이니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에디터와 디자이너 모두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거나(헬조선에서 달성 가능성 0.01759%), 매체의 기획이 훨씬 중장기로 이뤄지거나(T+L의 경우 1년 치 커버스토리부터 주요 기사 목록이 이미 다 정해져 있음. 이 역시 헬조선 달성 가능성 1.5947%), 아니면 에디터나 디자이너가 기획부터 디자인까지 혼자 다 하거나.

의외로 경제적이기까지 한

산술적으로 계산해 봐도 마지막 안이 의외로 실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에디터 4~6명과 디자이너 3~4명으로 구성된 일반적인 매체 팀 구성을 ‘에디터 겸 디자이너’ 7~9명으로 대체하는 거니 사용자 입장에선 크게 비용의 차이가 없다(물론 후자의 경우 에디터들이 쓰는 ‘똥컴’ 대신 디자이너 용 맥이나 고성능 모니터가 추가로 필요하게 되긴 하다). 대신에 (어차피 지금도 별로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디자이너-에디터 간 이해와 토론의 시간과, 그 둘 사이의 오해로 인한 시행착오로 낭비되는 시간이 대폭 줄 것이다. 원고 탈고 후 추가로 필요한 디자인 작업 시간은 한 사람당 배분되는 기사의 수(와 이에 해당하는 기획-취재에 걸리는 시간)가 줄어들면서 충당 가능하다. 자연스레 모든 기사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디자인 요소가 충분히 감안되고, 원고와 디자인 사이의 불협화음은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니) 0에 수렴한다.

단, 각자가 각자의 기사와 각자의 디자인으로 작업물을 만드는 경우 생길 수 있는 페이지 별 디자인의 일관성 문제는 항상 유의해야 한다. 글과 디자인 모두에 탁월한 실력과 감각을 지닌 – 그런 사람이 있긴 하다면 – 편집장이 이 모두를 컨트롤할 수 있다면 이상적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지금처럼 디자인 팀장과 편집장을 따로 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일부만 붙은 샴쌍둥이냐, 머리 둘 달린 ‘오르토스(Orthus)’냐… 사이의 선택인 건지도).

‘지르기’ 전에 체크할 것들

현실적으로 남는 마지막 문제는 ‘글과 디자인 모두에 능한 에디터’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다행히 요즘의 여러 직업군, 특히 IT업계를 중심으로 한 새 세대의 콘텐츠 생산 직종에서는 ‘통섭과 융합’ 이야기가 나온 지도 벌써 십 수년이 됐다. 둘 이상의 영역 – 코딩하는 기획자, 글 쓰는 디자이너나 사진가 등등 – 에서 전문가 수준의 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고, 이들을 혼자 다 할 수 있게 해 주는 탁월한 도구(adobe의 프로그램들과 같은)도 널렸다. 글로 커리어를 시작해 디자인으로 돈 버는 지점까지 온 나처럼, 이미 지금도 사진에서 시작해 글까지 쓰는 사람, 글에서 시작해 그림까지 그리는 사람, 음악에서 시작해 글까지 쓰는 사람이 주변에 가득하다. 물론 그 모두를 프로처럼 잘 하기 위해서는 관심과 공부와 부지런함과, 운(특히 사람운!)마저도 꼭 필요하다.

‘1인 기업’ 같이, 십 수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것들이 더 이상 상상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은 지는 벌써 꽤나 시간이 흘렀다. 하나를 마스터하기에도 몇 년씩의 수련과 경험이 필요했던 아날로그적인 개별 노동들이 컴퓨터를 비롯한 디지털 기술의 도움으로 하나로 연결됐다. 콘텐츠 생산과 관련한 대부분의 영역은 이제 동시에 경험하고 공부하고 또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진입 문턱이 낮아졌다. 꽤나 전문적인 기술들도 인터넷 검색 몇 번으로, 혹은 공개 강좌나 유료 강좌를 통해 금새 마스터할 수 있을 정도다. 말하자면 구슬은 도처에 널렸고, 새 구슬은 시간 단위로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어떤 분야에서든 ‘통섭의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다면 이 구슬들을 꿰고 엮어 낼 방법만 찾으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절대적으로 필요한 한 가지는 관심과 시간과 노력이라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이고 정량적인 본인의 마음가짐과 시간 투자다. 돈이 아니라 용기와 마음가짐을 투자할 것. 그게 회사원이 아닌 ‘내 회사’를 꿈꾸는 1인 기업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