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Life

[브루클린] 사랑이 오고, 사랑이 떠나고, 사람이 커 간다

“로맨스 영화의 틀을 빌린 한 소녀의 성장기”라는 평에 동의한다. 아름다운 배우와 미소를 짓게 만드는 서정적인 촬영과 음악이 잘 어울린 멋진 영화라는 데도 이견이 없다. <브루클린>은 낯선 땅 – 혹은 낯선 시기 – 에 발을 디딘 소녀의 모든 걸 집어삼킬 듯한 맹렬한 위협들을 한 방에 잊게 해 주는 사랑에의 경탄을, 더없이 차분하고 따뜻한 카메라로 가득 가득 담은 영화다. 여기서 소녀가 숙녀로 커 가는 과정에 꼭 필요한 게 사랑(남자)이라 오해하는 건 감독의 뜻이 아닐 것 같다. 같은 맥락에서 “이 곳이 어떤 곳인지 잊고 있었다는” 말에 담긴 것들이, 아이가 어른으로 커 가면서 버리고 떠나야 할 것들을 의미하지도 않을 것이라 믿는다.

다만 ‘~뜻이 아닐 것이다’라고,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구구절절 추측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는 것은, 이 영화의 구조가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꽤나 커 보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상에 주체적으로 몸 담을 의지와 심성을 충분히 갖춘 똑똑한 주인공의 성장기로 읽히길 원했다면, 그녀의 인생에 해가 뜨고 지고 다시 뜨는 순간마다 꽤나 멋진 남친(들)의 존재를 부각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녀의 고통을 구원한 착한 남자, 그녀의 맘을 흔들어 놓은 멋진 남자, 그리고 다시 제 자리로 되돌려 놓은 (남자) 스캔들. 이 잘 만든 영화를 성장 ‘동화’ 그 너머까지 나아갔다 보기 힘든 이유가 바로 이 지점이다. 주인공이 겪는 삶의 부침에 비해, 그것을 빠져나오는 데 도움을 준 주변인들의 캐릭터가 조금은 과하게 평면적인 것도 마찬가지.

하지만 사실 스토리고 촬영이고 뭐고 간에, <브루클린>은 주인공 에일리스의 미소 한 번, 표정 한 번에 그저 함께 울고 웃는 영화다(남자들의 ‘태후’입니까). <어톤먼트>의 그 꼬맹이, 시얼샤 로넌은 정말이지 눈부시게 성장했다. 얼마나 눈부셨냐면, 아름답게 성장한 배우에게서 나오는 섬광을 그대로 가져다 주인공 에일리스의 동화 같은 이야기로 덧바른 선택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눈부신 한 수로 보일 정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