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Life

[채식주의자]의 ‘젖가슴’은 어떻게 번역됐을까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젠 더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예전에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작가의 이런 말글들이 영문으로 어떻게 번역될 지 정말 궁금했었다. 젖가슴을 그냥 breasts라 하면 충분할까? 그건 그냥 가슴이잖아. 젖가슴은 아니잖아. 뭔가 milky한 게 들어가야 하나? 설마 boob은 아닐 테고(…), 뭐 이런 것들을 포함해서. 사실 모든 번역서들에 있어 번역자의 역할이 어디까지여야 하고, 어디까지를 인정해 줘야 하는지는 내게 있어 늘 흥미로운 생각거리였다.
[채식주의자]의 번역자가 한강 작가와 함께 맨부커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은 그런 점에서 번역자들에게 꽤나 큰 의미일 것 같다. 번역이 제 2의 창작임을 새삼 재확인하는 동시에, 번역에 있어 그들의 재량을, 그들의 감각과 통찰을 좀 더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번역자들이 해당 작가를 더치열하고도 철저히 공부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겠지만.

Can only trust my breasts now. I like my breasts; nothing can be killed by them. Hand, foot, tongue, gaze, all weapons from which nothing is safe… Why am I changing like this? Why are all my edges sharpening — what am I going to gouge?

다시 돌아가서, 뉴욕타임스 기사를 보니 번역자 Deborah Smith는 그 부분을 이렇게 번역했다. 생각보단 쉽게, 동시에 꼭 한강이 직접 쓴 것 마냥 간결하고도 선명하게. 아마도 영문판 [채식주의자]에 실린 말글들은 한결같이 그러할 것이다. 그것은 한강의 [채식주의자]와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작품인 동시에, 한글을쓰는 작가 한강만이 낳을 수 있었던 바로 그 [채식주의자]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