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Life

[곡성哭聲]을 보고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정말이지 보고 나서도 믿기지 않는 영화다. 내가 본 것들과 내 안에서 이해된 것들이 마지막 30여분 간 계속해서 요동치면서, 처음부터 끊임없이 밀어붙여 온 ’무지’에의 공포가 객석을 통째로 집어삼킬 즈음 영화가 끝이 난다.

내내 의심을 하는 등장인물들과 함께 나도 내가 본 것들을 다시금 의심해 본다. 모두가 본 것을 믿으려 하지 않고, 못 본 것을 못 봤다 여기지 않으며, 남이 본 것보다 내가 보고 싶은 것들에 매우 불공평한 가중치를 얹은 채 세상에서 일어난 일들을 바라본다. 그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이 답답하기 그지없는 시스템 속에 갇혀 절망적인 상황으로 내몰리는 입장에서라면 그 당연한 의심과 타인의 자연스런 자기중심적 사고는 대단한 공포와 위협으로 다가온다. 한 명에서 시작된 “~라 카더라”는 열이 되고 스물이 되며 확신으로 바뀌며, 이 걷잡을 수 없는 의심과 확신의 곡소리 속에선 이성도 양심도 종교도 시스템도 아무런 힘을 못 쓴다. 무력함이 쌓이고 쌓인 끝에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일들을 우린 이미 많이 알고 있다. 책에서도, 영화에서도 자주 다뤄 온 그 익숙한 공포를 맘껏 쥐락펴락하는 감독의 수완에, 나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마지막 30분을 주먹 꽉 쥐고 버텼다.

마음을 진정하고, 결말을 곱씹어보면서 드러나는 몇 가지 플롯상 구멍이라 여겨지는 부분들에 대해 나는 여전히 궁금증을 갖고 있다. 그게 의도적인 ’훼이크’였다면 그건 좀 불공평한 처사라 생각한다. 의심과 의혹, 현혹과 미혹이 얽히고 설킨 가운데 관객들도 잔뜩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있을 줄 뻔히 알면서도 그냥 그렇게 남겨놓은 구멍이라면? 글쎄, 적어도 [곡성] 정도의 만듦새라면 예술가의 당당함 – 혹은 뻔뻔함 – 으로 넘어가 줄 용의는 있다. 아니, 눈 딱 감고 한 번 더 보러 가야 할 좋은 핑계거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해석의 여지가 많은 상징과, 무엇보다 “그래서, 누가 뭘 어찌됐다는 거야?”라고 되물을 수 밖에 없는 교차편집으로 점철된 이 영화는 벌써부터 과하게 정치적이거나, 과하게 종교적이거나, 과하게 진지한(응?) 비평들을 양산하고 있다. 이렇게 영화 한 편을 두고 진지하게 백분 토론을 하거나, 서로서로 조각난 그림을 내보이며 퍼즐 맞추기를 해 볼 수 있는 기회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뭐가 중헌지도 모르믄서” 그렇게 의심하고 반박하고 다시 남 말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그 선연했던 공포는 꽤나 오랫동안 선명한 곡소리로 귓속을 맴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