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랑스와 레옹 책표지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장애 감수성

유엔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15%, 약 15억 명에 달하는 사람이 장애를 안고 살고 있습니다1. 물론 여기에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경미한 장애도 포함돼 있지만, 장애인이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애인을 비장애인이 일상에서 마주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장애인이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동보조시설 등 장애인이 집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장애인이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사회로부터 격리됨으로써 비장애인은 장애인과 교감할 수 있는 기회를 좀처럼 갖기 힘듭니다. 이는 다시 사회 전반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비장애인들이 장애인과 대면하고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힐 ‘장애 감수성 교육’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학생을 대상으로 장애 감수성 교육에 신경을 쓰는 학교와 교육기관이 점점 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장애 감수성 교육의 형식과 내용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특히 ‘눈 가리고 지내기’나 ‘휠체어 타고 이동해 보기’ 등, 비장애인이 그저 장애를 체험해 보는 수준에 그치는 일회성 교육은 장애 감수성 향상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장애 감수성이란 비장애인이 장애를 ‘불편함’이나 ‘불쌍함’, 심지어 ‘능력 없음’의 의미로 오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서부터 키워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턱없이 부족한 시설보다도 장애인을 진정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자신을 ‘도움이 필요한 특별한 존재’로만 바라보는 비장애인들의 시선입니다. 더 많은 비장애인들이 이를 인지하고 장애인을 ‘나와 조금은 다르지만 지극히 평범한 이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장애인들도 비로소 맘 편히 일상을 누릴 수 있을 겁니다.

플로랑스와 레옹 삽화

2016년 캐나다 총독문학상 그림책 부문 Finalist

에이치비출판사 아동도서브랜드 ‘불의여우’의 네 번째 그림책인 《플로랑스와 레옹》은 바로 이런 ‘평범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장애인’에 눈길을 주는 책입니다. 2016년에 캐나다 최고의 문학상인 ‘총독 문학상(Governor General’s Literary Awards)’ 그림책 부문 Finalist에 오른 이 책은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살고, 사랑하고, 성장하는 장애인들의 일상의 한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폐 장애를 안고도 수영강사 일을 거뜬히 하며 살아가는 플로랑스와 시각 장애를 안고도 특유의 친화력으로 보험 중개업을 하는 레옹. 이 두 사람은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를 알아가며 사랑의 감정을 싹틔웁니다. 

이제는 고전이 된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연상시키는 남녀 간의 우연한 만남과 사랑이라는 이야기는 사실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평범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평범함이 《플로랑스와 레옹》 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그간 장애인들은 이렇게 평범한 이야기에서조차 평범하지 못한 캐릭터로만 등장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점점 많은 장애인이 드라마나 책 등 대중매체 속에 등장하고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주인공의 주변부만 맴돕니다. 오죽하면 영국의 BBC가 지난해 타계한 스티븐 호킹 박사의 업적 중 하나로 “《심슨가족》, 《스타트렉》, 《빅뱅이론》 등의 인기 콘텐츠에 휠체어를 탄 채 등장함으로써 그간 대중문화에서 철저히 소외됐던 장애인들이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는 것을 꼽았을까요2.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사는 두 장애인이 지극히 평범한 방식으로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담백하게 담아냄으로써, 《플로랑스와 레옹》은 역설적으로 장애인들에게 이토록 평범한 삶이 얼마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한 토막의 이야기는 ‘두 명의 장애인’ 이야기이기 이전에,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한 키 큰 남자 레옹과 솔직하고 호기심 많은 명랑한 여자 플로랑스라는 ‘두 평범한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무심하게 자신들의 장애를 털어놓고 이를 매개로 대화를 이어가는 이 두 사람의 하루를 지켜보노라면 우리는 평범한 사실 하나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바로 우리 곁의 장애인의 삶이, 그리고 그들의 장애가, 사실은 비장애인의 그것과는 ‘아주 조금 다른 점’일 뿐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줄거리

특별한 것을 좋아하는 플로랑스는 어릴 적 수영 대결에서 친구를 이길 때마다 구불구불 구부러진 빨대로 밀크셰이크를 마시곤 했습니다. 누구보다 큰 사람이 되고 싶은 레옹은 어릴 적 축구 시합에서 질 때마다 엄청나게 길쭉한 빨대로 주스를 마시곤 했습니다. 바라던 대로 개성 있고 훤칠한 어른으로 자란 두 사람은, 어느 날 운명처럼 길에서 서로 부딪칩니다. 폐가 좋지 않은 수영강사 플로랑스와 눈이 좋지 않은 보험판매원 레옹은 금새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카페에서 마주 앉습니다. 이 두 사람 앞에 놓인 커피와 주스 잔에는 이제 구불구불 구부러지지도, 엄청나게 길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빨대 두 개가 나란히 꽂혀 있습니다. 빨대 구멍으로 숨을 쉬는 것 같은 플로랑스와 빨대 구멍으로 세상을 보는 것 같은 레옹은, 이 평범하고도 특별한 하루의 끝에서 어떤 사랑을 싹틔우게 될까요?플로랑스와 레옹 삽화

저자 소개

시몽 불르리스 Simon Boulerice

캐나다 퀘벡 대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연기와 춤을 배운 시몽 불르리스는 글, 춤, 연기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뽐내는 작가입니다. 주로 시와 희곡, 소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글을 쓰며, 저서로 《에릭은 못 생겼어요》, 《배 속의 사과나무》 등이 있습니다.

델피 코테라크루아 Delphie Côté-Lacroix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고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주얼 아티스트인 델피 코테라크루아는 단순한 구도와 몇 가지 한정된 색깔만으로 섬세하고 호소력 있는 그림을 그립니다. 현재 캐나다 몬트리올에 살고 있습니다.

옮긴이 박선주

국문학과 한불 번역을 공부했습니다. 옮긴 책으로 《곧 이 방으로 사자가 들어올 거야》, 《안녕 사랑 안녕 행복도》, 《생각이 켜진 집》, 《야크》, 《한밤의 위고》, 《동방의 항구들》, 《프란츠와 클라라》 등이 있습니다. 

플로랑스와 레옹 삽화


      1. UN Flagship Report on Disability and Development 2018 
    1. BBC “Hawking: Did he change views on disabi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