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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깨어있는 노장의 주먹은 얼마나 매울 수 있는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디젤냄새 진동하는 탁월한 액션영화로 보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겁니다. 아니, 이 이상 흡입력 있고 질리지 않는 액션을 보여준 영화가 근래에 또 없었단 편이 더 정확한 말이겠죠. 퓨리오사는 로봇팔 없이도 펀치를 날릴 수 있어 이 영화가 혈기 왕성한 멜 깁슨을 데리고, 역시 팔팔했던 조지 밀러 감독이 만들었던 30여년 전의 <매드맥스>와 성분이 같다는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일흔 살의 노 감독이 자신의 “리즈”시절 성공작을 다시금 만들었는데, 그게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엄지척’을 받았단 이야기죠. 씨네21의 은하수처럼 쏟아지던 전문가 별점을 보며 저 역시도 이 노장이 뚝심으로 밀어붙인 그 액션 명장면을 꼭 보고 싶었습니다. 요즘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CG 사용을 최소화하고 몸으로 찍어 낸 그 날 것의 액션씬이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이제서야 보게 됐고요.

“후배님들, 서사공부 다시 하고 오실게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액션들은 소문 그대로입니다. 더 가감할 말도, 덧붙일 수사도 부질없을 정도로 입이 떡 벌어지고 손에 땀을 내는 액션들이 두시간 내내 이어지는데도 전혀 지루하거나 과하단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인사와 수사를 경멸하는 서부영화의 과묵한 총잡이 마냥, 노련한 감독은 불필요한 대사보다는 액션만으로 그 모든 세계관과 등장인물들의 부침과 기승전결을 전달해 내는 신기를 선보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를 ’이야기 없는 마초액션영화’로 보는 건 오해입니다. 오히려 ’액션영화는 서사가 부족하다’는 관객의 경험적 편견(?)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영화에 가깝습니다. 광고 좀 찍었다고 헐리우드에서 어깨 힘 주는 마이클 베이 같은 ’어린애’들한테 제대로 한 방 먹인 대선배의 일갈이랄까요. “바보야, 문제는 그게 아니라구.” 하고 말이죠.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또한 ’액션영화는 마초적이다’라는 편견에도 통렬한 주먹을 날리는 영화입니다. 사실 이는 영화를 본 뒤 김혜리 기자의 씨네21 기사를 읽고 나서야 뒷통수를 따앙! 하고 한 대 맞으며 감탄한 부분이었습니다. 액션과 이미지에서의 탁월한 성취에 가려진, 조지밀러 감독의 진정한 ’엄친아’적 면모랄까요. 이렇게 폭력과 자동차와 디젤 냄새를 뒤집어 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일 수 있다니! 이 충격적인 반전(?) 덕에 저는 이 영화를 반드시 한 번 더 봐야겠단 결심을 했습니다. 다시 보며 감탄하고, (임모탈을 경배하는 워보이들처럼;;;) 경배하고, 또 무릎을 탁 치고 싶어요. “이 영화의 또렷한 페미니스트 지향을 외면하는 반응은, 페미니즘 미학이 여성 캐릭터의 우월성을 무차별적으로 관철시키고 모든 사건 전개에서 여성이 이니셔티브를 쥐는 것이라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

액션영화로서가 아닌, 영화사에 남을 수작

김혜리 기자의 이 말 덕에 이 영화는 제 안에서 그만 한 번 더 높은 곳으로 도약을 하고 말았습니다. 여자가 남자를 이겨서가 아니라, 각 인물들이 하나의 ’주체’로서 상호작용하고 서로 도우며 새 세상을 향해 가는 여정을 이토록 과묵한 액션으로 보여주는 영화라니요. 게다가 이것이 ’결과론적 균형’이 아니라, 의도된 것이라는 점에서 이 감독에게 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던 마초영화인 원작을 다시 만들면서, 조지 밀러 감독은 바로 이 부분에서 기존 플롯을 혁신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합니다. 그래서 영화의 최종 편집은 편집기사이기도 한 자신의 부인에게 일임했다고 하네요. ’한때 껌 좀 씹었던 할배 감독’이 이토록 신선한 시선을 갖고 이런 틀깨기를 시도할 수 있으려면, 대체 뭘 해야 하는걸까요? 어떻게 하면 이렇게 멋지게 노회할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나이들어도 멋진 쥬드로보단, 나이들어도 깨어있는 조지밀러가 그래서 무척이나 부러워졌습니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배우고, 무엇보다 마음과 귀를 열어놓아야겠어요. 70대에도 꼰대이기보단 개척자이고 싶기 위해서는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