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Life

[아노말리사] 당신의 지겨움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Anomalisa

  1. 지난 겨울 초입 이터널선샤인을 다시 만났던 극장에서, 겨울을 보내고 찰리카우프만을 또 만났다.
  2. [존말코비치되기]도 보이고 [이터널선샤인]의 느낌도 참 새삼스럽고. 역시나 그는 전통적인 – 그의 입장에선 한없이 진부한? – 방법으로는 단 한 마디도 자기 생각을 전달할 생각이 없는듯하다.
  3. 아무런 정보 없이 영화를 보다보면 느낄 몇 가지 의아함(똑같은 목소리들, 똑같은 얼굴들)이 곧 무릎을 탁 치는 발견으로 바뀐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란 형식 자체가 주제를 전달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을 보여주면서, 감독은 “내 생각을 전하는 데 존말코비치조차도 필요없어”라며 이젠 연출자로서의 자신의 천재성을 뽐내는 것 같다.
  4. 그 천재성에 대해 덧붙이자면, 직접 쓴 가사가 들어간 멋진 엔딩곡으로 확인사살까지 한다.
  5. ‘노멀’한 인생에 대한 절망과 푸념은 모든 불륜남(녀)들의 가장 손쉬운, 알고도 속아주는 만능키다. 하지만 키라고 해 봤자 그것은 자기 호텔방 문조차 매 번 한 번에 열지 못하는 스톤 씨의 만성적 무기력을 재차 증명하기만 한다. 노멀한 인생을 구원해 줄 것만 같은 불규칙성anomaly 또한, 그것이 내 것이 되고 난 다음 – 가령 다음 날 아침? – 엔 또다른 한 조각의 지겨운 일상일 뿐이다. 게다가 어노멀리란 단어엔 이미 그 안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노멀’을 내포하고 있지 않은가.
  6. 주인공 ‘아재’의 외모나 신분, 그리고 이야기 흐름 때문인지 자꾸만 [인 디 에어Up in the Air]의 조지 클루니가 떠올랐다. 그 ‘아재’의 심정에 격하게 공감(?)하는 나 역시 또 한 명의 아재임을 실감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똑같은 얼굴과 목소리를 가진, ‘그 외 인물 중 한 명’으로 처리되고 만 주인공의 아내는 또 무슨 죄란 말인가. 공허함은 세상의 남편들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닌데. 직접적으로 맥락이 닿아 있는 건 아니지만, 마침 이틀 전에 대한민국의 위험한 ‘아재 예능’을 다룬 좋은 글을 읽어서 더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7. 십 몇 년 전 [치킨런]이 내 마지막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었는데. 이 형식으로 정사 장면까지 보게 될 줄이야. 난 또 그렇게 조금 더 어른이 되었다.(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