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Life

[라라랜드] 인생은 프리재즈일까, 크리스마스캐롤일까

예술이란 이름으로 스스로 괴물이 되는 길을 택한 두 재즈 아티스트의 이야기를 들고 나타났던 데미안 차젤레 감독은 아직도 음악에 대한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았다. 그러면서도 마치 [위플래쉬]의 플레처 교수마냥 “똑같은 음표를 남들 다 하는 방식으로 연주하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하다.

드럼 스틱으로 정수리를 끊임없이 얻어맞는 느낌으로 봐야했던 [위플래쉬]의 다음 영화라기엔, 이 영화 [라라랜드 La La Land]는 믿을 수 없이 사랑스럽고 명랑하며, 동시에 스산하고 가슴 아프다. [라라랜드]는 사랑스럽다기엔 너무 찌질했고 명랑하다기엔 지나치게 처절했으며, 함께 가슴아파하기에 앞서 ‘왜들 저렇게까지?’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위플래쉬]의 반대 지점에 서 있다. 피맺힌 드럼스틱 대신 경쾌한 구둣발 소릴 내며 우리 삶을 지탱해 주는 꿈과 황홀한 순간을 노래하고 찬양한다. “이 맛에 사는 거 아니니?”라며, “그 맛에 사랑하는 거잖아”라며. 하지만 그 노랫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 그 끝에는 쉽게 잡히지도 끝까지 유지되지도 않는 그 ‘맛’을 위해 이 엄혹한 세상을 노래하며 버텨 내라는, 지키지도 못할 약속 같은 반전이 기다린다.

작법이 달라졌고 분위기와 장르까지 달라졌지만 [라라랜드]는 [위플래쉬] 이상으로 데미안 차젤레의 지문이 선명하다. 드러머를 꿈꿨으나 좌절하고 영화판에 뛰어들었던, 바로 그만의 영화다. 전작에서 집념이 운명을 해방하도록 끝내 내버려두지 않았던 그는 이번에도 꿈이 현실로부터 두 발을 떼고 날아오르는 것을 불허한다.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노래하고 꿈꾸며 상상 속에서 우주 끝까지 날아오르지만, 노래가 끝나면 다시 세상은 그만큼, 딱 그 3-4분의 노래만큼만 굴러가 있을 뿐이다. LA는 마치 든든한 친구처럼 주인공들 기분에 맞춰 호흡하다가도, 이세상 전부일 것 같은 너희들의 사랑이 마치 “none of my business”라는듯, 언제나 저 혼자서만 아름답다.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묻는다. 저 밝은 별이 혹시 나만을 위한 거냐고. 이 사랑은 영원하며 꿈은 결국 이루어지는 거냐고. 하지만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있듯, 그리고 대부분 진작에 체념했듯, 그에 대한 응답은 휘파람을 싣고 멀리 사라져버린 바람만이 알고있다. 대답을 돌려받을 수 없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하고 실패하고 후회하다가 아주 가끔 성공한다. 그게 사랑이든, 꿈이든, 혹은 둘 다이거나 둘 다 아니든. 참담함인지 체념인지, 혹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영원히 봉인한 ‘가지 못한 길’에 대한 경의인지 알 수 없는 두 남녀의 마지막 미소는 그래서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에 대한 정수를 담은 명장면이다. 상대방 모습을 가득 담은 눈동자 위로 스치는 희미한 미소와 그 뒤에 이어지는 마지막 상상처럼, 인생이든 사랑이든 지나고 보면 미소 한 줌에 불과하다는 말은 어쩌면 진리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당장 꿈과 사랑을 맞바꿔버린 입장에서 그러한 평가절하는 대관절 무슨 소용인가. 당사자들은 전부를 가졌지만 아무것도 갖지 못한 심정으로 오늘밤엔 이불을 차고 또 찰 텐데.

우리 인생과 사랑은 프리재즈일까 크리스마크 캐롤일까. 모범 답안은 그 중간 어디쯤 있을 테고, 표준편차는 그 양 끝단에서 볼록할 것이다. 어떤 스탠스를 취하든 전부를 가지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죽는 날까지 못 가진 것을 돌아보며 나라 잃은 미소를 짓거나 슬픈 노랫말을 중얼거릴 것이다. [위플래시]에서 참을 수 없는 평범함에 치를 떨던 플레처 교수를 연기한 JK시몬스가 이번엔 속물스런 레스토랑 오너로 등장해 “프리 재즈는 질색”이라며 징글벨 류 음악만을 원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준다. 그의 ‘변절’은 옳은가, 그른가. 우리의 만들어 가는 선택과 후회는 또 옳은가, 그른가. 슬프지만 이 아름답고도 쓰라린 영화가 할 수 있는 말은 “어차피 후회” 정도밖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