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Growing-Up

네가 원한다면, ‘먹구름’이어도 괜찮아

Photo by Joshua K. Jackson on Unsplash

주위를 둘러봐도 예전 부모들처럼 내 아이가 무작정 ‘말 잘 듣는 아이’가 되길 바라는 부모는 찾기 힘든 세상입니다. 그렇다면 ‘햇살 같은 아이’는 어떨까요? 긍정적이고 따뜻하며 포용적인 이 멋진 단어는 언뜻 보기에 내 아이의 ‘트레이드마크’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단어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조차도 자신의 성장이 바탕이 된 게 아니라 다른 이의 강요나 의무사항으로 부과되는 일이라면, 그것은 아이에게 또다른 억압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미국의 작가 엘레니 O. 게이지Eleni O. Gage가 딸을 보낼 유치원을 찾던 중 느낀 것들을 뉴욕타임스에 썼습니다. 그 일부를 소개합니다.

다음으로 원장 선생님이 보여주신 것은 역할 분담 차트였습니다. 줄반장과 냅킨 당번 등을 정해 아이들에게 책임감을 가르치기 위한 것으로, 역시나 모든 유치원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었죠. “이건 다른 곳에서 못 보셨을 거예요.” 원장 선생님이 자랑스럽게 내보인 것은 역할 분담 차트에 적힌 “우리 반 햇살(Class sunshine)”이라는 역할이었습니다.

“햇살의 역할이 뭔가요?” 내가 묻자 그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만약 급우 맥스가 오늘 기분이 우울해보인다, 그러면 ‘햇살’인 친구가 맥스에게 먼저 다가가서 ‘맥스, 기분이 안 좋니? 안아 줄까?’라고 물어보는 거죠.”

함께 시설 투어를 하던 부모들의 얼굴에 함박미소가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분노를 금할 수 없었죠. 왜 세 살난 내 딸이 맥스의 기분을 맞춰주고 기분 장애를 해소해주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입니까?

“우리 반 햇살” 같은 인간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평생을 보낸 제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교사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좋은 점수를 받았고, 주문을 잘못 받은 웨이터의 기분을 생각해 시키지도 않은 음식을 기꺼이 먹었으며, 길을 가다 부딪히면 상대가 화분이라도 사과를 하는 인간으로 살아왔죠. 우리 사회는 이미 여성에게 “햇살” 같은 존재가 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말리아가 “우리 반 먹구름” 같은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번역문 원문 출처: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