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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퀴어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 바보야, 사랑이야!

사랑이라서 하고픈 이야기

2015년 <캐롤>, 2016년 <문라이트>, 그리고 작년과 올 초 아카데미를 달궜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까지, 이 시대의 퀴어(queer) 영화에서는 더는 주인공이 비참한 결말을 맞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불편하고, 보이는 곳에서든 보이지 않는 곳에서든 차별이 행해지는 것도 여전하지만, 영화는 그저 운명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꼭 붙드는 주인공들의 ‘그 순간’에 온전히 시간과 공을 들인다. 퀴어라서가 아니라 사랑이라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훨씬 많다는 뜻이다.

그러니 퀴어들의 사랑이 영화 속에서 완결되느냐는 중요치 않다. 모든 사랑은 그것이 마음속에 생겨남으로써 이미 완성되며, 그 순간이 얼마나 눈부신지는 우리도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남자 대 남자 사이에서든, 여자 대 여자 사이에서든, 그 눈부심이 당사자로선 어쩔 도리가 없는 것임도 우리는 안다. 사랑에 국경과 빈부와 신분 격차가 없다면, 사랑에 꼭 ‘남과 여’가 있어야 할 이유는 어디 있을까. 불.가.항.력. 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 순간에 쓰는 말이고, 그것이 불가항력이란 걸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이 멋진 사랑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동성애가 질병 혹은 어떤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부모로서 아이 앞에서 그걸 다루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기는 하다. 마치 20여 년 전 부모들이 섹스가 부끄러운 게 아님을 인정하면서도 아이 앞에서 그 이야기를 자연스레 꺼내기 힘들어했던 것처럼. 더구나 성 소수자들이 여전히 비정상적인 사람 취급을 받는 우리 현실에서, 아이 앞에서 동성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마치 ‘전염성 강한 그 무언가’를 아이 곁에 두는 위험한 일이라 여기는 부모도 아직은 많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그림책들

Red - a Crayon's Story by Michael Hall
Red – a Crayon’s Story by Michael Hall

이런 현실적인 장벽 앞에서도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섹슈얼의 앞글자를 딴, 성 소수자를 지칭하는 용어)와 아동 그림책을 연결짓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책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자신에겐 ‘빨강’이란 딱지가 붙어 있지만 파란색 밖에 나오지 않는 크레용을 다룬 <빨강 크레용의 이야기>(Red – A Crayon’s Story)는 잘 알려진 예다. 물론 이 책을 꼭 성 소수자 이야기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사상의 자유와 관용에 관한 이야기로 폭넓게 생각할 수도 있고, 바로 그 점이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하다. 남과 다른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부담 없이 아이와 나눌 수 있게 해 주니까.

동성애를 좀 더 가까이서 다룬 <사랑해 너무나 너무나>(And Tango Makes Three)도 있다. 실제로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 살며 새끼까지 기른 수컷 펭귄 커플인 실로와 로이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비록 이 펭귄 커플을 ‘동성애’의 범주에 두는 게 맞는지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 그림책은 ‘가족의 본질은 성별이 아닌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한다.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후 몇몇 보수 단체들은 저자와 출판사에 거센 항의를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저스틴 리처드슨은 “동성 부모의 아이들도 자신과 같은 가족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을 뿐”이라며, 이 책 역시 동성애 이야기 이전에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했다.

해야만 하는 이야기

사실, 동성애를 다룬 콘텐츠를 접한 독자들이 그것을 ‘동성애를 권장하는 것’이라 단정해 버리면 콘텐츠 제작자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권장한다고 배워지는 것도 아니고, 금지하거나 반대한다 해서 근절되는 것도 아님을 인정하는 처지에선 더 그렇다.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을 읽은 독자라면 거기서 가정 내 불평등한 성 역할에 대해 고민을 끌어내야지, 이를 ‘남혐 이야기’라 오해해서는 곤란한 일인 것과 마찬가지다.스텔라네 가족

<스텔라네 가족>을 펴내면서 마음 한구석에 든 걱정 중 하나도 그런 ‘오해’에 대한 것이었다. <스텔라네 가족>은 국내 아동 그림책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게이 부모를 둔 아이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뤘다. 동물 캐릭터를 통해 에둘러 표현하거나, 동성이라는 사실을 얼버무려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대신에 ‘아빠만 둘’이라는 사실에 대한 아이들의 현실적인 고민을 직접 다룬다. 현실을 애써 둘러가지 않으면서, 부담스럽지 않고 유쾌하게 생각 거리를 잘 던져 준다는 점이 <스텔라네 가족>의 가장 큰 장점이다.

어쩌면 어른에게 필요한 깨달음: 바보야, 사랑이야!

우화가 아니라 인간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이기에, 동성애가 여전히 불편한 일부 독자에게 어떤 불편함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불편함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애들이 보고 배우면 어떡해?” “그래서, 애들한테 이걸 가르치자는 거야?”라는 지적 같은 것들이다. LGBT 관련 이슈에 꼭 등장하는 이런 류의 질문은, 하지만 본질로부터는 가장 멀리 떨어진 질문이기도 하다. 순수한 아이들의 눈높이로는 더욱 그렇다. 영화와 책과 인권단체의 활동에 힘입어 어른들이 이제야 좀 인지하게 된 사실 – ’동성애’란 단어에서 밑줄 쳐야 할 부분은 ‘동성’이 아닌, ‘사랑’이라는 사실 – 을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다.

<스텔라네 가족>에서 초등학생 스텔라에게 ‘아빠가 둘’이란 사실이 가져다주는 현실적인 고민이란 전혀 정치적이지도, 관념적이지도 않다. ‘어머니날 파티’인데 자기가 사랑하는 아버지(들)과 그 외 가족들을 부르고 싶다는 데서 오는 난감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스텔라 학교 친구들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엄마만 둘’인 한 친구는 벌써 다음번 ‘아버지날 파티’가 걱정일 뿐이다. 아무도 ‘다름’을 ‘틀림’으로 생각하지 않는 세상에서, 따돌림이나 차별, 혐오는 설 자리가 없다. 어쩌면 그 사실을, 우리 어른들만 모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